17세기 영국의 임상의학을 대표했던 토머스 윌리스가 정신과적 치료의 목적으로 뇌의 기능을 연구하면서 정신의 법칙을 다루는 학문으로써 심리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심리학이라는 단어는 영혼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psyche와 어떤 주제를 연구한다는 의미의 logos가 합쳐진 것이다. 초기에는 심리학을 또 다른 말로 "영혼에 대한 탐구"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심리학의 다양성으로 인해 심리학자들 간에는 심리학의 목표 연구 방법을 설명하는 데 이견이 있다. 심리학은 인간 행동의 포괄적인 설명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심리학이 과학이 되기 위해서는 엄격한 분명하게 규정된 그리고 결과의 항상성을 강조하는 일반화된 과학적 방법론을 따라야 한다. 심리학은 인간의 정신 과정과 행동에 관한 과학적 연구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심리학은 철학의 한 분야로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점차 철학에서 분화되어 과학의 한 분야로 자리 잡아 나가게 되었다. 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빌헬름 분트가 라이프치히 대학에 첫 심리학 연구소인 정신 물리실험실을 개설하면서부터였다. 분트는 심리학을 직접경험 학문이라 정의했으며, 연구 방법론으로는 내성법을 주장하였다. 근대 이전에 마음이란 신체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고 보았다. 마음은 영혼의 표현이라고 생각했으며 물질이 아니므로 신체의 일부분으로 보지 않았고 물질이 아닌 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심리학을 철학의 한분야로 여겨졌다. 이후에 여러 실험과 연구를 통해 유의미한 결과가 심리학은 체계적이며 과학적으로 연구가 가능한 하나의 학문으로 취급되기 위해 시작하였다. 기원전부터 심리학에 대한 탐구는 계속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심리학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식론에 관한 문제를 그에 대한 논쟁은 르네상스 이후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같은 사람들로 이어지게 되었다. 데카르트는 마음과 몸이 별개의 실체임을 주장하여 마음에 대한 경험적 탐구를 중시하는 현대 심리학의 입장과는 다른 입장을 갖고 있었다. 독일의 형이상학 철학자 볼프가 그의 저서"심리실험과 심리 추론"을 출간함으로써 조건을 사용한 실험은 일반적인 심리 실험의 방법이 되었다. 디드로는 이러한 심리실험과 심리추론의 차이점에 대해 그의 책에 기술하였고 비랑에 의해 프랑스에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형태주의 심리학은 1910년~1912년 2년에 걸치는 기간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슈탈트 심리학의 창립에는 물리학자인 철학자 칼 슈툼프의 세 사람이 큰 영향을 끼쳤다. 마흐는 특정한 공간 형태는 더 기본적인 요소로 환원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슈툼프는 분트와의 논쟁 과정에서 숙달된 청자들이 그렇지 않은 일반인들보다 음악적 관찰자로서 더 적합함을 주장하였다. 이후의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은 이들의 영향 아래 성장하였다. 에렌펠스는 "형태질"의 존재를 주장하여 특정한 경험의 질은 개별적 감각 요소 이상임을 역설했다. 레빈은 여러 가지 이력을 지닌 이색적인 심리학자였다. 그는 여러 분야에 걸쳐 업적을 남겼으며 사회심리학의 창시자로 간주한다.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은 환경과 사람 모두이다라는 그의 장이론이 있다. 그는 위상기하학을 차용하여 자신의 개념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곤 했다. 여러 연구 등의 업적도 남겼다. 베르트하이머는 가현운동에 지각된 움직임을 파이 운동이라 불렀다. 베르트하이머의 피험자였던 코프카와 콜러 역시 게슈탈트 심리학자였으며, 모두 슈툼프 아래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코프카는 게슈탈트 심리학을 미국으로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콜러는 이후 게슈탈트이론의 보급에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들로 밝혀진 것들을 게슈탈트 체제화 원리라 이름 붙여 발표하였다. 유사성 좋은 연속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20세기 초 왓슨,손다이크,헐,톨먼,스키너등에 의해 행동주의 심리학이 주창되었다. 동물을 이용하여 학습 과정을 연구하였고,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학습이 환경의 자극에 대한 반응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자극반응이론은 특히 교육에 큰 영향을 주었다.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검증할 수 있는 것"을 강조하던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에 발맞춰 심리학 연구에서도 "검증할 수 있는 것"들만을 연구 대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그 이전의 큰 심리학적 흐름이었던 정신분석과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행동주의자들은 "검증할 수 있는 것"에 것"에 대한 집착 때문에 내적 과정에 대한 탐구를 소홀히 한 결과 어려움에 부딪히게 되었고, 주된 자리를 인지심리학 등 다른 분야에 내주게 되었다. 원래 뜻은 인간의 성격이나 본능이 행동으로 직결되며 이 외의 요소나 우연 등의 예외적인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이나 언어 등 겉으로 나타나는 것들을 관찰 등으로 얻은 정보와 연관 지어 인간의 감정 등으로 확신하여 규명하는 것을 비판한다는 뜻이다. 오스트리아의 프로이트는 인간의 행동을 무의식과 의식 자아와 초자아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인간 행동의 기반을 성적 에너지인 리비도와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로 보았다. 정신분석학은 과학적 엄밀성의 결여, 경험적 증거의 이론체계의 반증 불가능성 등으로 인해 비판받게 되었다. 이론 자체가 적용되지 않은 부분들과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반발감 등으로 영향력이 축소되어 현대심리학에서의 정신분석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현대에 와서 정신분석학은 주로 임상가들에 의해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으며, 오히려 심리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관심을 받는 추세이다.